7월의 독립운동가, 대한여자애국단 창립한 강혜원 선생
상태바
7월의 독립운동가, 대한여자애국단 창립한 강혜원 선생
  • 문경춘 한국지사장 mgc3322@daum.net
  • 승인 2020.06.30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대전현충원 안장
강혜원(1885년 11월21일~1982년 5월31일) 선생
강혜원(1885년 11월21일~1982년 5월31일)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강혜원(1885년 11월21일~1982년 5월31일) 선생을 2020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강 선생은 1885년 11월21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 황마리아를 따라 1905년 5월 하와이로 이주했다.
 
강 선생은 삯바느질로 학비를 벌었으며 1913년 4월 어머니와 함께 호놀룰루 대한인부인회를 조직하면서 한인부인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919년 3월 올케 강원신을 비롯해 한성선, 한영숙, 한신애, 김경애 등과 함께 한인여성단체인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를 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됐다.

강 선생은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부인회를 통합해 1919년 8월 대한여자애국단을 창립했다. 총단장으로 선임된 그는 1920년 2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통해 군자금 500달러를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그는 1921년 4월 28일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위원들과 함께 여자애국단 경고서를 발표하고 단비(團費) 수납을 촉구했다. 선생은 시간당 15센트씩 벌면서도 매달 3달러씩 단비(團費)를 냈다.

강 선생은 이후에도 부인회를 통해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그는 1940년 1월, 1941년 2월, 1941년 12월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단장으로 3번 선임돼 3년간 활동했다.
 
그는 미주 한인 동포 자녀들에게 민족교육운동을 실시하는 등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강 선생은 해방 후 재미한인전후구제회(在美韓人戰後救濟會)와 함께 본국에 구제품을 보냈다. 그는 1982년 5월31일 별세해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Rosedale)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2016년 남편과 함께 유해봉환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강 선생 어머니 황마리아(1865~1937)는 하와이 한인사회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2017년 애족장에, 남편 김성권(1875~1960)은 하와이 한인 한인단체인 한인합성협회, 흥사단 등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해 2002년 애족장에 추서됐다.

동생 강영승(1888~1987)은 미주한인사회 최초로 법학박사 학위을 취득한 인물로 대한인국민회, 신한민보 등에서 민족운동에 헌신해 2016년 애국장에 추서됐다. 올케 강원신(1887~1977)은 선생과 함께 미주 한인사회 부인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1995년 애족장에 추서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