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2)시베리아 횡단철도 “그 뒤엔 러시아 노동자들의 위대한 희생 있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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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2)시베리아 횡단철도 “그 뒤엔 러시아 노동자들의 위대한 희생 있어 가능...”
  • 한국지사편집팀
  • 승인 2020.07.0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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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애물 바이칼 호수...세계 최대 담수호 바이칼 호수가 최대 난공사
옛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 모습 
옛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 모습 

세계 최대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공 뒤에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던 철도 공사가 이들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공사 시작 3년이 지났을 무렵 세르게이 비테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한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집권하게 되지만 실정으로 인해 러시아 전국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 사이 동아시아 에서는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철도 공사비는 돈 먹는 하마로 변해 있었다. 당초 예산 35,000만 루블(2013년 기준 약 122억 달러)을 훨씬 넘어섰다. 유일한 출구는 하루 빨리 공사를 끝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바로 러시아 기술자와 노동자의 희생이 위력을 발휘한다. 결론적으로 러시아 노동자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긴 철도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될 비슷한 시기에 대한민국에서는 1904년에 만들어진 경부선 철도가 있다. 441.7km4년 만에 완공된다. 연 평균 건설속도가 110km 정도로 기록 돼 있다. 이 보다 훨씬 이전인 1869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대륙철도는 총연장 2,826km6년 만에 완공됐다. 연 평균 건설 속도가 471km였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12년 만인 19037월에 개통됐다그때 길이가 약 8,140km로 연평균 626km의 속도로 건설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죄를 지어 시베리아에 유배 온 죄수들과 이주민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사용한 도구는 고작 망치, 괭이, 도끼, 그리고 손수레가 전부였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서 하루 16시간 동안 빙판에 무릎을 꿇은 채 얼어붙은 땅을 깨고 파냈으며, 사람 키 보다 높은 노반을 쌓고 자갈을 깔고 침목을 놓고 다시 레일을 까는 작업을 매일 2km씩 해 나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037월의 개통식으로 시베리아철도 건설이 100% 완공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1903년의 노선과 전혀 다른 것으로 이후 다시 13년의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에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게 된다.

(세계 최장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세계 최대 담수호 바이칼 호수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세계 최장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1903년 개통 됐지만 미완의 공사로 그치고 말았던 이유는 세계 최대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로 인한 것이었다. 그 당시 기술로는 폭이 무려 80km에 이르는 광대한 호수를 가로질러 철교를 놓는다는 것 자체가 어렸웠던 시절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호수 연안을 돌아가는 환상철교를 놓을수 밖에 없었다.

공사는 이미 1899년에 시작되었지만 워낙 난공사라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9037월 중국 영토를 관통하여 바이칼호수 동쪽 연안과 태평양 연안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어주는 동청철도 철도가 완공됐다. 러시아 철도청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완공을 선언하고 기차를 운행시켰다. 그런데 바이칼 호수 구간은 여전히 끊긴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횡단기차가 운행될 수 있었는지 아이러니 하다. 이는 바이칼 호수에 도착한 횡단기차를 말 그대로 호수 건편으로 옮겨서 날랐기에 가능했었던 것이다.

이를위해 러시아 철도청은 영국에서 3,479톤급의 증기 쇄빙선을 674만 루블(약 2억3,000만 달러(한화 약 2,762억 원))에 구입했다. 190년 4월 첫 운항기록에 따르면 500명의 승객과 167마리의 말, 증기관차 2대와 수송용 열차 3대, 1,000파운드 가량의 화물을 싣고 바이칼 호수를 건넜다고 한다. 호수에 초겨울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때 기차와 승객, 그리고 화물을 실은 증기선이 얼음을 깨고 지나가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쇄빙선이 깰 수 없을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어버리는 겨울이었다. 배가 더는 다닐수 없게되면 바이칼 호수를 하얗게 뒤덮은 두꺼운 얼음위로 약 45km의 임시 철로를 깔았다. 그러나 증기기관으로 기차를  움직이면 얼음이 깨질 우려가 있었기에 철로위에 얌전히 놓인 기차를 한 량씩 따로 떼어내 말들이 그것을 하나씩 끌어다 옮겼다. 

이런상황에서 화물과 승객이 늘어나고 더군다나 극동지역에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수품을 신속히 운반하는 것이 러시아에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하루에 단 13대의 기차만 통과시키는 바이칼 도화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도래한 것이었다. 결국 러시아 철도청은 미적거리고 있던 '바이칼환상철교'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약 260km 길이의 바이칼 연안 구간은 세계철도 건설 역사상 가장 힘든 공사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연안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화강암 절벽이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특히, 바이칼 항과 쿨툭 항 사이의 81km 길이 바이칼 둔차에 설치되는 철교는 높이가 해발 400m로,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은 작업 내내 암벽용 등반장비에 의지해야 했다. 이 구역에만 터널 39개, 회랑 16개, 그리고 다리와 같은 인공 시설물이 무려 470여 개나 설치됐다. 

이렇게 험난한 바이칼환상철교의 건설 공사비는 평균 공사비의 20배에 달했다. 공사 기간은 무려 6년(1899~1905년)에 이르렀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만약 바이칼환상철교 공사가 조금만 더 빨리 끝났더라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행이도 이 어려운 공사를 다소 늦게 끝낸 러시아 사람들 앞에서 러일전쟁 패전과 함께 풀기 어려운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시리즈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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