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3) 시베리아 횡단철도 “트로이카처럼 달리고 싶은 위대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상태바
(시리즈 3) 시베리아 횡단철도 “트로이카처럼 달리고 싶은 위대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 한국지사편집팀
  • 승인 2020.07.21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갖 장애 극복...25년 만에 세계 최장 철도 완공
건설비용, 당초 예상 3억 5,000만 루블 훨씬 넘어선 15억 루블 소요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공사 시작 25년 만인 1916105일 시베리아횡단철도는 마침내 완공 됐다. 건설비용은 당초 예상액 35,000천만 루블 보다 훨씬 많은 15억 루블이 소요됐다. 물론, 이 가운데 동청철도에 들어간 4억 루블은 결국 일본과 중국에만 좋은 일 시켜준 꼴이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이후에도 역사와 자연의 수 많은 도전을 계속해서 이겨내야만 했다.

혹한으로 인해 훼손되는 철로를 고치는 일은 다반사였고 여러번에 걸친 전쟁으로 철도 곳곳이 파괴돼 그때마다 엄청난 복원공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시베리아횡단철도는 이러한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1905년 연간 185만 명이던 승객은 현재 15,0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화물 운송량 또한 연간 1억 톤 이상을 수송하고 있으며, 명실공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젖줄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행객들에게도 꿈의 열차로 불리면서 평생 단 한번이라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 보는 것이 최고 로망으로 떠 올라 있다.

철도 건설에 담긴 러시아인들의 꿈과 도전, 고난과 희생 등을 뒤로한 채 오늘도 쉴새없이 유유히 달리고 있는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수 많은 굴곡을 거치며 이어져온 러시아 역사와 꼭 닮은면이 있다.

(다시 트로이카처럼 달리고 싶은 나라러시아...)

트로이카라는 말은 18세기(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에서만 존재했던 마차 형태를 뜻한다. 세 마리 말이 끄는 삼두마차를 뜻하는 것으로 러시아에서 18세기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왜 두 마리도, 네 마리도 아닌 세 마리가 끄는 마차를 만들었을까...? 러시의 광활한 벌판을 지치지 않고 빨리 달리기에는 세 마리가 마차를 끄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두 필의 말은 빨리 달릴수 있지만 쉽게 지치고, 네마리 이상의 말은 조율이 힘들뿐 아니라 기동성 마저 떨어진다. 러시아 사람들은 세 마리 말의 역할을 적절히 분배해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힘을 안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트로이카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가운데 말의 덩치가 제일 크다는 것이다. 이 말은 보통 양쪽 말 보다 5~20cm 정도 키가 크고 가슴과 다리 근육도 훨씬 발달 돼 있다. 그러나 트로이카의 진짜 비밀은 세 필의 말이 모두 서로 다른 체구를 가졌다는 점이 아니라 달리는 방법에 있다고 한다.달리는 마차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 속력으로 달릴 때 가운데 말과 양쪽 두 마리 말의 보법(步法)이 서로 다르다. 결국 트로이카는 두 가지 다른 기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복합 기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놀랍게도 네사람 이상을 싣고도 평균속도 시속 50km를 넘는다는 것이다.이같은 원리는 바로 능력에 따른 기능 분화를 최대화한 덕분이다. 이토록 훌륭한 트로이카의 지혜를 지녔던 러시아 제국이 왜 고작 200년 정도 만에 무너진 것일까...?

20세기의 젊고 튼튼한 청년이 이끌어야 할 트로이카를 열 살을 갓 넘긴 아이가 끌게 했던 제정 러시아가 몰락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러시아의 트로이카는 장기 불황을 이길수 있는 지혜와 함께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열쇠라고도 볼 수 있다.

(표트르 대제와 옛 수도 상트페트르부르크는 러시아의 트로이카 시대를 꿈꾼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 러시아에는 그 이후로도 그 이전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천지개벽의 개혁이 일언난 적이 있었다. 개혁의 주인공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표트르대제 였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러시아의 역사는 크게 표트르 대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만큼 표트르 대제에 의한 개혁이 러시아 역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 19세기 러시아의 역사학자 포고전은 한 평범한 러시아 귀족의 하루를 예로 들어 포트르 의 개혁이 러시아인의 삶 전체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표트르 대제가 개혁의 와중에 건설한 새로운 수도 상트페트르부르크는 사실 광대한 러시아의 왼쪽 상단 모서리에 위치해 있어 한 나라의 수도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의 위대한 개혁 중 최고 걸작품은 수도 상트페트르부르크 건설이다.

이 옛 수도는 1990년에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2015년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발표한 최고의 여행지 순위에서 17위로 선정 되기도 했다. 2015년의 경우 예를보면 한해 동안 이 도시의 인구 510만 명 보다 많은 650만 명의 관광객이 이 곳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 이 도시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문화유산만 8,464, 대형 박물관만 200여 개가 있다. 세계적인 박물관 에르미타슈를 비롯, 세계 어디를 가도 이렇게 수 천 개의 문화유산이 한 곳에 집중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 창건 이래 300년 동안 1년에 한번 이상 발생한 대홍수와 수 많은 사상자를 낸 사회주의 혁명, 도시를 폐허로 만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 적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900일 간의 독일군 공습 등으로 고립 돼 수 많은 고난을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때로는 수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수 십 년 간의 복원과 복구작업을 감내해 가며 표트르 대제의 위대한 개혁의 유산을 지켜내 왔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노력과 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가 트로이카시대를 다시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이같은 러시아인들의 정신에 깃들어 있다.

북극개발과 기후 변화로 인한 세계 수산물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할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 과의 관계가 좋아진다면 풍부한 자원을 활용한 극동지역 개발과 수산업 발달로 인한 급속한 발전이 기대된다.

세계에서 사연이 가장 많은 나라, 톨스토이, 푸시킨과 같은 대문호의 나라, 자원의 보고(寶庫)였던 알래스카를 헐값에 미국에 팔아버린 나라....

그러나 러시아를 얘기 하려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빼고는 얘기를 시작할 수 없는 나라가 러시아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